사타남 스트리트의 한구석. 아직 프랑스 조계(組界) 시절의 잔재가 남아 있는 고풍스러운 서양식 건물. 대외상으로 부겐빌리아 무역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는 러시안 마피아 「호텔 모스크바」의 태국 지부. 1년 내내 여름의 빛을 띄는 태국과는 겨우 입구의 문턱하나로 갈리듯 러시아의 냉랭함을 품고 있는 곳. 검붉은 카펫이 길을 알리는 복도를 걸으며 보리스 중사는 창 밖을 바라본다. 해는 쨍하고, 10월 말임에도 겨울의 옷자락조차 보이지 않는다.
"……."
보리스는 걸음을 멈추었다. 눈을 한번 깜빡이고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다시 복도로 시선을 되돌린다. 한번 더 눈을 깜빡인다. 이런 곳에 절대로 있을리 없는 모습의 사람이 있다. 소피야 이리노스카야 파블로브나. 이미 무덤 속에 파묻혀 다시는 되돌아 오지 못할자의 이름.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시절의 대위, 아니 중위의 모습. 무참히 아무렇게나 잘라버린 금빛의 단발. 제대로 지워질리조차 만무한 고통의 상처가 존재하지 않는. 제 키보다 긴 군용 코트를 걸치고 복도 끝에서 천천히 걸음을 행하고 있다.
"아."
눈이 마주치자 경례를 한다. 소피야, 아니, 소피야 중위의 모습을 한 망령은 눈을 가늘게 뜨며 웃는다. 보리스와 같이 손을 머리에 올려 붙혀 경례를 올린다. 키득키득 웃고는 보리스의 옆을 지나친다. 희미하게 달콤한 향이 스친다.
"대…아니, 중위님."
가볍게 망령은 뒤를 돈다. 눈은 투명한, 검은색을 품은 푸른빛. 군용모가 커 주저앉아 눈빛을 가리고 있지만 그 아래로 언뜻 빛난다. 보리스는 주머니를 뒤져 손에 잡히는것을 망령의 손에 건낸다.
"이것을."
보리스가 넘긴것을 손에 쥐고는 망령은 웃는다. 키득키득 웃는다. 그 웃음소리가 복도에 퍼진다.
"Спасибо."
희미하게 웃음소리 사이로 그런 말소리가 들린것 같다.
"하아."
얼얼한 뒷통수를 쓸으며 보리스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망령은 문 앞에 있다. 「대위」의 문 앞에. 노크도 없이 망령은 망설임없이 걸쇠가 걸리지 않은 손잡이를 내려누른다. 문은 아무 저항없이 열린다. 제대로 정비된 경첩의 녹슨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창으로 투과해오는 햇빛만이 비추는 그 방 안에서 발랄라이카는 망령과 눈이 마주쳤다.
"크…,"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는 순식간에 폭소로 변해 빛보다 먼저 그 방안을 가득 채운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망령의 시선은 신경쓰지도 않은채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역시 넌 재미있어."
아직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발랄라이카는 그리 말했다.
"이미 죽어버린 자의 모습이니까, 괜찮지 않나요?"
"그래, 죽어버렸지. 그 녀석은."
의자를 밀고 일어나 망령, 아니 망령의 모습을 한 소녀에게로 향한다.
"사탕은 없어, 알지?"
부드러운 웃음이 그 얼굴에 띈다.
"괜찮아요, 이미 받았으니까."
"누구한테?"
"중사님한테."
"여전히 귀여운 구석이 있네, 중사는."
발랄라이카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가실줄 모른다.
"변장, 소용없지 않아?"
단정히 손질되어 붉은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이 군모를 빼앗아 흔든다. 사락, 금발이 흔들린다. 그 군모를 제 머리에 쓰고선 흔들리는 금발을 손가락으로 훑는다. 그 안으로 새까만 머리칼이 흘러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