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떨림을 애써 눈치채지 못한척하며 강제로 눈을 맞춘다. 푸른 불꽃의 시선에서 도망치고만 싶다.
"물론이지."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한다.
그런 일도 있었지. 그녀는 자신의 무릎 위로 지쳐 떨어져 내린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내린다. 마치 새하얀 백금을 실로 자아낸 것만 같이 반짝인다. 손에 닿는 감촉이 매끈하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보다시피 그녀는,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거짓말쟁이. 말로 형성되지 않은 단어를 공기만으로 중얼거린다. 발랄라이카는 항상 그렇다. 자신과 호텔 모스크바의 이익을 위해 서슴치 않고 거짓말을 입에 담는다. 하지만 나는 무슨 득이 있는 건가요? 입술을 짓씹는다. 대체 나는 당신의 무엇인가요. 여색 놀음이야 아무나 붙잡으면 될 것을. 손에 들어온 금발의 끝을 힘을 줘 문지른다. 반짝거림이 손에 묻어나는 것만 같다.
밤바람이 커튼을 휘감는다. 정신도 같이 휘말릴 것만 같다. 태국의 밤하늘은 맑다. 저 멀리서 부어지는 색채가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들어온다. 여름임에도 옷깃에 스치는 밤바람은 서늘하다. 누군가의 거짓말만큼이나. 어딘가에 고향 땅의 바람이 올지도 몰라 그녀는 찬찬히 눈을 감고 바람을 삼킨다. 무릎 위에 지친 사람이 뒤척이는 것이 느껴진다.
"돌아가고 싶어?"
푸른 시선은 그때만큼이나 뜨겁지 않고, 그때 만큼이나 차갑지도 않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아뇨."
그녀는 부드럽게 그 시선을 마주친다.
"단 한 번도."
거짓말. 발랄라이카는 다시 눈을 감는다. 항상 눈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주제에. 그녀의 시선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발랄라이카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말간 유리구슬 같은 눈동자는 속내도 그 시선이 향하는 것도 절대로 내비치지 않는다. 어딘가로 시선이 향한다는 것만을 보여줄 뿐.
"발랄라이카 씨는,"
머리카락을 쓰는 손길이 간지럽다.
"저를 좋아하시는 건가요?"
저도 모르게 호흡을 멈춘다. 좋아해? 내가? 한 번 눈을 떴다가, 아주 천천히, 억만 겁의 시간을 들여 깜빡인다.
"아니."
좋아한다면, 이 감정이 좋아한다는 감정이라면, 너는 이 감정을 쥐고 흔들어 이용하지 않을까? 눈을 내리깐다. 오후의 햇살을 닮은 색의 눈썹이 망망대해의 눈동자에 짙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녀는 발랄라이카에게 보이지 않는 자조적인 미소를 짓는다. 당신은 거짓말을 계속해나가는 것도 거짓말이군요. 당신다워라. 이쪽을 향한 채로 드러난 얼굴의 흉터를 가볍게 손으로 쓴다. 깜빡이는 눈꺼풀로 인해 닿는 속눈썹 탓에 손가락이 간지럽다.
"너는."
"네?"
"너는?"
손을 잡아 이끌어 손가락 끝에 키스한다. 너는 어때. 그녀는 간지러운지 작게 웃는다.
"좋아해요, 제법."
제법이라니. 발랄라이카는 눈살을 찌푸린다. 눈동자에 밤의 색이 섞인다. 다만 그 말에는 한 톨의 거짓도 담겨있지 않았다. 기뻐해야 할는지, 슬퍼해야 할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 표정이 어린아이 같아 그녀는 입가에 그려지는 호선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발랄라이카 씨가 붙잡고 있는 동안은 떠나지 않을게요."
부드러운 손길이 다시 한번 머리카락을 쓸어내린다. 거짓말. 너는 언제든지,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면서. 천천히 눈을 감는다. 언제든, 어디서든, 무언가를 다 포기해 내려놓고 그 상황에 안주할 것이면서. 눈을 깜빡이고 몸을 일으킨다. 그녀가 시선을 맞춰온다. 새로운 곳에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올리지도 않을 것이면서.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잡아 손바닥에 키스한다.
"그러니까 안심해요."
예전처럼 손을 내빼지도 않고 웃으며 그렇게 말한다. 이건 거짓말쟁이들의 사교장이다. 거짓말쟁이 둘이 손을 잡고 추는 무대 위의 댄스. 아주 천천한 박자로 이어지는. 거짓말쟁이들의 왈츠. 아직도 앳된 티가 남아있는 부드러운 볼을 잡고 가볍게 입맞춤한다. 몇 번을 입술만 맞닿고 잠시 떨어져, 다시 한번 깊게 서로를 탐한다. 천천히 눈을 감으면 밤의 색이 밀려온다. 거짓말쟁이의 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