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공기가 무겁다. 뜨거운 공기 중을 휘젓는 실링팬의 멍청한 소리만이 집무실 안을 떠돈다. 열린 창문으로 뜨거운 햇살이 열심히 더위를 나른다. 이 더위를 식혀줄 유일한 수단인 에어컨은 제게 맡겨진 일을 버티지 못하고 고장난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
"더워…."
중얼거림조차 더위에 이기지 못하고 내려앉는다.
"더, 워…."
누군가 들어주기를 원하지도 않은 채 내뱉은 말은 내려앉으며 제 존재를 알아줄 사람을 찾아 헤맨다. 무거운 가죽 소파를 넘어 두터운 카펫을 지나 도달한 곳. 이 더위에도 묵묵히 서류와 눈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 발랄라이카는 그녀의 반복된 불평에도 대꾸하지 않은 채 무언가 신체기관 하나라도 고장난 것이 아닌지 의심될 지경의 정장 차림새 그대로 만년펜을 휘갈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그 자리만 냉랭한 시베리아 벌판 같아서 자리를 옮겨 원목 책상에 기대어 앉아보지만 같은 장소의 기온이 그렇게 차이날리 없다. 움직여 더 더워진 품에 실망감만을 안고 다시 몸을 일으키면 남은 서류는 아직도 한가득. 더위로 어질이는 머리에 키릴문자까지 집어넣고 싶지 않은 그녀는 휘청이며 소파로 돌아가 드러눕는다. 더위에 소파가 녹아 끈적이는 것만 같다.
'말이 없는걸 보면 역시 대위님도 더위를 타는게 아닐까.'
힐끔, 다시 쳐다보면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후끈, 더워진다. 아무리 그래도 39도를 육박하는 날씨에 정장 마이라니. 눈살을 찌푸린다. 그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발랄라이카는 소파에 녹아 늘어진 그녀를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내린다. 선풍기라도 가져와 틀어줄까 싶어져 그녀가 몸을 일으키자 똑바로 시선을 맞춰온다. 그 눈의 색은 투명하디 투명한 얼음과도 같아서 무심코 그 눈동자 속에 빠져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곧 끝날거야."
이 더위속에서도 인내심이 끊기지 않은 상냥함이 담긴 목소리가 말한다. 털썩, 가볍게 몸을 드러눕힌다. 끝나고 나면, 어디 시원한 데라도 가자고 할까. 미프라오의 쇼핑몰이라던가. 에어컨이 빵빵히 틀어져나오는 건물 내부를 생각하며 그녀는 눈을 감는다. 작은 바람이 타고 들어온다. 한 숨 자면 더위도 조금은 가실까. 발랄라이카의 서류 처리가 적당한 시간에 끝나기를 바라며 그녀는 하나둘 정신을 희끄무레한 꿈으로 밀어넣는다.
-
초침의 소리다. 공기가 흔들린다. 누군가 방 안에서 움직인다. 그 누군가는 소파에 앉고 그녀를 내려다 본다. 열기가, 누군가의 몸에서 나온 열기가, 닿지 않은 살갗에 느껴질정도로 흘러나온다.
"아."
가만히 눈을 뜨면 비친것은 그녀를 내려다보는 발랄라이카의 얼굴. 무심코 소리가 새어나온다. 무거운 시선의 눈동자는 웃음을 짓는다.
"일어났어?"
"네, 에…."
그녀는 몸을 일으키려하다 행동을 멈춘다. 발랄라이카가 위에서 거의 짓누르고 있는 탓이다.
"대위님?"
"응?"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여있다.
"더워요."
비켜달라는 말을 대신해 입에 담는다. 발랄라이카는 그래, 라고 답할 뿐. 비킬 생각이 없어보인다. 어지간히도 생각을 읽기 어려운 사람이다. 특히 다른 사람을 괴롭힐 때에는. 그것은 어느 크나큰 전쟁에도 해당하지만 아주 사소하게도 그녀를 괴롭힐 때에도 해당한다. 조용히 닿아온 손은 그 어느때보다도 뜨겁다.
"봐요, 대위님도,"
"벗어."
"네?"
발랄라이카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그녀는 얼빠진 표정을 짓는다. 너무 단도직입적인 탓에 아이러니하게도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다. 한참이나 눈을 깜빡인 뒤에야 그녀는 그 뜻을 깨닫는다. 그녀가 깨달은 표정을 짓고나서야 발랄라이카는 웃는다.
"더우면 벗으면 되잖아."
나긋한 목소리가 더위를 재촉하는 듯하다. 열기가 아까보다 한층 뜨겁게 올라온다.
"아니, 그렇게 따지면 벗어야 하는건 대위님 쪽…,"
"내가 벗겨줄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보다 빠르게 발랄라이카의 손이 그녀의 옷깃을 붙잡는다.
"한참전부터 생각했어. 덥다덥다 노래를 하면서 왜 벗지는 않는건지."
보통은 덥다고 벗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 말을 입에 담지 못하고 발랄라이카의 손을 붙잡는다. 손은 천천히도 그녀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어 내려간다. 그녀의 힘으로 발랄라이카의 행동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마치 아무런 행동의 제약을 받고 있지 않는것처럼 평소대로 앞섶을 헤집어나간다.
"대위님, 잠깐…."
"응?"
아무리 손을 잡아 쥐고 애써봐도 멈추지 않는다. 대답조차도 아무런 힘이 들어가지 않은것마냥 여유롭다. 단추가 풀릴때마다 벌어지는 옷 사이로 몸 안에 갇힌 열기가 빠져나가고 외부의 공기가 흘러들어와 피부를 스친다. 톡, 톡, 단추가 풀리는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더위보다는 긴장으로 인한 땀이 맺힌다. 귀는 공기보다도 뜨겁게 달아오른다. 속옷이 다 드러나보일 즈음에야 발랄라이카는 손을 멈춘다. 스커트의 허리부분에 막힌탓이다.
"이제 그만…."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에 그녀는 한숨과도 같이 그 말을 겨우 입에 담는다. 발랄라이카는 아주 천천히 그녀보다도 뜨거운 손으로 배부터 허리 부분을 쓸어나간다. 그 허리의 끝부터 스커트의 파스너에 손을 대어온다.
"그, 그렇게 치면 벗어야 하는건 대위님이잖아요."
거의 발버둥치듯 파스너를 사수하며 그녀가 평소보다 언성을 높인다.
"나는 덥지 않은걸."
"거짓말."
평소보다도 뜨거운 피부가 전부 알려준다. 발랄라이카는 눈동자를 한번 움직여 다른곳을 쳐다보고는 다시 그녀와 눈을 맞춘다.
"그럼 벗겨줄래?"
"네?"
"내가 널 벗겨주고 네가 날 벗겨주면, 이치에 맞는 결과지. 안그래?"
또 그렇게 궤변을 내려놓고. 그녀는 무어가 불만인듯 눈살을 찌푸린다.
"벗기는 것 뿐인가요?"
"원하는거 있어?"
질문에 질문으로 답한다. 딱히. 중얼거리듯 되물음에 답하고 손을 뻗는다. 정장 마이는 너무도 쉽게 풀려 벌어진다. 그녀의 손이 떨어지자 발랄라이카는 능숙하게 몸을 일으켜 벗고는 소파 밖으로 떨어뜨린다. 와이셔츠의 차림새는 너무도 생소한 것이라 그녀는 무심코 손을 멈춘다. 발랄라이카는 파스너에 다시 손을 대어오며 낮게 웃는다.
"다음?"
그 말이 정신을 되돌려놓고 그녀는 와이셔츠의 단추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가슴께의 단추는 가슴의 부피를 겨우 버티는듯 팽팽하다. 손을 대어도 괜찮은가 싶은 부위이기에 멈칫거리는 그녀를 즐겁게 내려다본다. 파스너를 푼 손은 스커트를 내리지 않고 되려 스커트의 밑에서부터 들어가 올라간다. 그녀가 몸을 움찔이며 반항의 눈빛을 보내자 쿡쿡거리며 웃는다.
"이쪽에 무방비하게 다 보인채로 누워있었으면서 뭘 그래?"
발랄라이카의 말에 새빨갛게 물든다. 벗기 전보다도 더워진다.
"만지는건 다른…,"
"다리밖에 안만졌는걸."
시치미떼듯 손을 꺼내 들어올린다.
"………."
가만히 노려보면 아까보다도 즐거워보이는 표정을 짓는다. 단추에 다시 손을 대려하자 그녀의 손을 붙잡는다.
"타임 오버."
그 손 끝에 키스하고는 어벙벙한 표정을 마음껏 감상해댄다.
"나가고 싶어했잖니? 시원한 곳으로."
시선으로 시계를 가리킨다. 쇼핑몰이 닫기까지 몇시간도 남지 않았다.
"나가려면 지금. 어쩔래?"
시선이 벌어진 앞섶을 타고 내려간다. 발랄라이카의 손에서 손을 빼내온다.
"나갈래요."
조금의 짜증을 담은 목소리가 단호하게 답한다. 그래, 상냥한 목소리가 답해온다. 몸을 일으켜 그녀의 몸을 풀어준다. 그녀가 제멋대로 풀어헤친 단추를 하나씩 잠가나가며 차를 대기시킨다. 얌전히 앉아 미간에 주름을 잡은채 그녀도 발랄라이카가 전부 풀어둔 옷의 잠금을 전부 다시 잠가나간다. 정말 제멋대로인 사람. 벗기 전보다도 한참이나 뜨거워졌던 순간을 생각하고는 한숨을 내쉰다. 분위기에 지지 않기를 잘한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추, 하나 틀렸어."
어느새 제 정장을 다 갖춰입은 발랄라이카가 그녀의 단추를 중간부터 다시 잠가 올라온다. 멍하니 그 손동작을 내려다보고는 발랄라이카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아직도 놀리는 듯한 표정의 얼굴을 붙잡고 입을 맞춘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행동에 답지 않게 놀란 표정. 무언가 하나 이겼다는 느낌이 들어 발랄라이카와 닮은 웃음을 띄운다.
"더우니까 여기까지예요."
그녀가 뛰쳐나간 집무실에는 여전히 그녀몫의 더위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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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8
Dolce ; 드림 평일 전력 @dream_DOLCE60
여름, 안아달라고도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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